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나카 유키모리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모략과 배신이 난무하던 [[전국시대(일본)|전국시대]]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군인 아마고 가문을 배신하지 않았고, 아마고 가가 궤멸된 후에도 아마고 가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덕분에 [[메이지 시대]] 이후 '무사도의 정신적 지주'로서 교과서에 실린 적 있고, [[태평양 전쟁]] 시절에는 시카노스케의 일화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에 악용되기도 하였다. 아들인 고노이케 나오부미(고노이케 신로쿠라고도 함, 원래 이름은 야마나카 유키모토)는 시카노스케의 죽음 후 무사를 그만두고 상인이 되어 오사카에서 청주 장사로 떼돈을 벌어 고노이케 재벌의 시조가 되고 손자인 1대 고노이케 젠에몬[* 본명은 아니고 대대로 내려져오는 세습명인데, 본명은 고노이케 마사나리(正成)이다.]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해운업과 다이묘의 참근교대 수송업을 시작으로 환전업과 다이묘와 사무라이를 대상으로 한 대부업으로 크게 키워서 고노이케 재벌을 세웠다.[* 에도시대때만 해도 고노이케는 미쓰이, 스미토모를 능가하는 거상이었다.] 오사카 근방에서 고노이케란 이름이 붙은 곳들은 대체적으로 이쪽의 영향이다. 고노이케 재벌은 2차대전 이후 산와은행(三和銀行)[* 유키모리의 손자인 마사나리가 1656년 환전소를 차린 것이 시초이다. 1877년 '제13은행'이란 이름으로 근대적인 은행을 설립하고 1879년 '고노이케 은행'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, 1933년 제13은행과 야마구치 은행을 합병하여 산와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.]을 중심으로 한 산와그룹으로 재편되었다가 버불 붕괴 이후 나고야의 '도카이 은행'과 합병하여 UFJ은행이 되었고, 2006년에 [[미쓰비시 UFJ 은행|도쿄 미쓰비시 은행과 합병하여]]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. [[분류:센고쿠 시대/인물]][[분류:암살된 인물]][[분류:1545년 출생]][[분류:1578년 사망]][[분류:아마고 가문 가신]][[분류:시마네현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